Era of three Mexicans 생각

2014년 아카데미 (86회)
작품상: 12 Years a Slave (directed by Steve McQueen)
감독상: Alfonso Cuarón – Gravity

2015년 아카데미 (87회)
작품상: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directed by Alejandro G. Iñárritu)
감독상: Alejandro G. Iñárritu – Birdman or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2016년 아카데미 (88회)
작품상: Spotlight (directed by Tom McCarthy)
감독상: Alejandro G. Iñárritu – The Revenant

2017년 아카데미 (89회)
작품상: Moonlight (directed by Barry Jenkins)
감독상: Damien Chazelle – La La Land

2018년 아카데미 (90회)
작품상: The Shape of Water (directed by Guillermo del Toro)
감독상: Guillermo del Toro – The Shape of Water

2019년 아카데미 (91회)
작품상: Green Book (directed by Peter Farrelly)
감독상: Alfonso Cuarón – Roma
촬영상: Alfonso Cuarón – R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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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년 동안의 아카데미 시상식 중, 2017년 한 해만 빼 놓고 매 해동안, 세 명의 멕시코 감독들이 만든 영화가 작품상이나 감독상, 혹은 둘 다를 받았다. 이냐리투가 연달아 두 해를 해 먹고, 다음으로 델 토로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한큐에 가져가고 나니까 5년 전에 받았던 쿠아론이 다시 나타나서는 감독상과 촬영상(!)을 같이 챙겨가는 올해.

Era of three Mexicans.


기사를 믿을 수 있는가?: 기사 수정에 관하여 생각

이번에도 돌아온 신문 기사 이야기. 중앙일보 이병준 혹은 이태윤 기자(왜 "혹은" 인지는 아래에 나온다)는 2월 6일 (설날인데 애쓴다) 기사 하나를 올리는데, 요지는 설날 가사노동을 체험해 보니 많이 힘들었다면서 "어머니의 ‘명절 파업’은 이유가 있었다"고 마무리한다 (참고로 위의 링크는 msn.com의 링크인데, 2월 7일 새벽 1시 현재 아직도 초판본을 그대로 보여준다. 제목부터...)

3대 독자(!)인 남자 기자가 평생 안해본 설날 노동을 체험해 보니 어머니(와 가사노동하는 많은 여자들)의 어려움을 몸으로 알게 되었다... 뭐 이런 내용의, 어찌 보면 별 거 아닐 수 있던 이 기사가 어제부터 핫해진 이유가 있다.  자기의 개인적인 체험을 적은 기사에서, 첫 문단에서는 자신을 3대 독자라고 소개하더니 바로 그 다음 문단에서는 "어릴 땐 숙모와 형수님만 부엌을 드나들며 음식을 만들고 삼촌들은 거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라고 적은 것이다. 누가 봐도 어이가 없는 이 상황, 당연히 여기 저기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기레기라던가...). 이병준 기자도 눈치를 챘는지, 기사를 수정했는데 혹자는 이것을 Version 1.0이라 칭한다.

여기에서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번째 포인트는 기사 수정의 포인트가 틀렸다는 것.  첫번째 수정에서 3대 독자를 삭제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하지만 기자가 3대 독자는 놔두고 "숙모와 형수" 부분을 고치기로 결심한 순간, 수정의 수라장이 열렸다.  장구한 수정의 역사를 보고 싶으면 여기를 가보면 좋다.  2월 7일 새벽 1시 기준으로 Version 4.5까지 나와 있는 상태다. 수정에 재수정에 최종수정에 최종수정_2까지. 남들 다 노는 설날 연휴에 수정의 늪에 빠진 이병준 혹은 이태윤 기자가 안쓰럽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두번째 포인트다. 신문의 기사는 한 글자 한 글자가 중요하다. 하지만 기자도 사람인지라 기사 작성에 실수가 있을 수 있다. 만약 처음 작성한 기사에 오류가 생겨서 기사의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오류를 수정한 뒤에 어느 부분이 고쳐졌는지 해당 기사에 명시를 해야 한다. 어느 신문이 그러냐고? 이 신문이 그런다. 당장 2월 5일의 기사인데, 2월 6일에 수정한 뒤 기사 최하단에 어느 부분이 고쳐졌는지 적시해 놓았다 (수정하면서 기자가 쪽팔렸을 것 같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틀리다니). 심지어 이 신문은 어느 한 부분이라도 수정된 기사들은 몽땅 모아서 찾기 쉽게 보여준다. 뉴욕타임즈가 유난을 떠는 게 아니다. 어느 기사든, 기자가 기사를 썼으면 마지막 한 글자까지 책임을 지고, 혹시라도 잘못된 부분이 나왔다면 명시적으로 수정한 뒤 공개해야 하는 건 멀쩡한 신문사와 정직한 기자라면 다들 알고 있고, 또 그렇게 한다.

이병준 혹은 이태윤 기자의 중앙일보 기사와 비교해 보자. 2월 7일 새벽 1시 현재, 중앙일보 웹사이트에 게시된 기사를 본 사람 중 이 기사가 최소 네 번 이상, 여기 저기가 누더기가 되도록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기사라는 걸 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작은 글씨로 된 "입력 2019.02.06 06:00 수정 2019.02.06 18:17"을 눈여겨 보지 않는 한 기사가 수정됐다는 사실 조차 알아채기는 힘들 것이다 (그나저나 12시간 정도에 네다섯 번이나 기사를 수정했다니 이것도 어떤 면에선 대단하다). 사실, 네다섯번 수정을 해야 할 정도면 이건 기사를 내리고 사과문을 걸어야 할 수준이다. 그 대신에, 여기 저기 땜빵을 해 놓고서는 별 일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있는 건, 뭐랄까, 안타깝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잘못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배운다.

물론 이병준 혹은 이태윤 기자만 이런 게 아니고, 우리 나라 신문기자 대다수가 기사 중 고쳐야 할 게 생기면 은근슬쩍 고쳐놓은 뒤 안그런 척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그래도 안타까운 건 안타까운 거다. 글쓰기로 밥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글을 개X같이 알고 대충 써갈긴 뒤에 틀리면 고치면 돼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라 믿고 싶다.

p.s. 제일 처음의 msn.com 링크에 의하면 이 기사는 이태윤 기자와 이병준 기자가 같이 작성한 것으로 되어있고, 네이버 모바일 버전의 기사에는 아예 이태윤 기자가 크레딧인 것처럼 보이는데, 정작 중앙일보의 기사에는 이태윤 기자의 이름이 빠져있고 이병준 기자만 나온다. 이것 또한 미스테리.

p.s. 종이 신문 시절에 비해서 요즘은 인터넷 신문이라 기사 고치기가 쉬워진 게 기자들의 글쓰기에 긴장을 떨어뜨린 것인가?  그렇다고 이걸 핑계로 삼지는 않겠지.

p.s.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이병준 기자의 기사는 사실을 보도한 것이 아니고 가상의 상황을 창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주변의 이야기를 모아서 하나의 상황을 보여주는 건, 어찌 보면 기자의 본분이다 (이런 걸 "취재"라고 한다). 하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모아서 하나의 상황을 만들고선 그게 "내 개인의 실제 경험"이라고 쓰는 건, 단순하게, 거짓말이다.

p.s. 이병준 기자는 3대 독자로서 차례상에 도전하기 보다는 기자로서 정확하고 정직한 글쓰기에 좀더 정진하는 것이 어떤가 제언한다.

영문 버전 아웃룻 이메일 메시지 Subject 라인에서 스펠체크가 에러나는 문제 생각

1.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진짜 거슬리던 것을 해결한 기념으로 메모.

2. 제목 참 길기도 하다.

3. 한글을 쓰는 사람이 영문 윈도우와 영문버전 아웃룩을 쓰다보면 맞닥뜨리는 문제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이메일 메시지 박스의Subject 라인에 생기는 빨간 언더라인 ("너 오타났어!").  아웃룩은 자동 스펠체크 기능이 있는데, 본문 뿐만 아니라 Subject 라인의 오타도 체크해 준다.  그런데 분명 정확하게 타이핑을 했는데, 본문에서는 문제가 없으나 Subject 라인 스펠체크는 에러라고 하면서 빨간 언더라인을 그려주는 때가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아웃룩 이메일 메시지 박스를 열고, Subject 라인에 "test"라고 입력하고 본문에도 똑같이 입력을 한 결과:


이렇게, Subject 라인에는 빨간 언더라인이 생기고 본문에는 생기지 않는다.  와이?

나만 이런 것이 아니다.  잠시만 구글을 해 보면 나같은 사람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래 링크를 열고 읽다 보면 밑에 한국사람인 듯한 분도 있다).  더 문제는, 아래 링크에서는 아직도 원인이 뭔지 모른다고 한다는 점.  명색이 그래도 마이크로소프트 사이트인데...


그런데 오늘! 어쩌면 해답이 될 지도 모르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바로 한글입력기.

영문윈도우를 사용하다 보니 한글을 쓰려면 Korean IME와 영문 키보드 두 가지를 입력기로 사용하는데, Korean IME에서도 영어를 쓸 수 있어서 보통은 Korean IME를 켜 놓고 한/영을 바꿔가면서 쓴다.  오늘도 이메일을 쓰는데 Subject 라인 스펠체크가 에러 떠서 한숨을 쉬고 있는데, 문득 쳐다보니 입력기가 Korean IME로 되어 있던 것이다.  어... 이거 혹시 한글 입력기 켜놓고 써서 스펠체크가 영어라고 인식 못한 거 아냐?  에이 설마 그럴까 싶었지만, 확인해 보는 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해봤다.  일단 Korean IME에서 영어를 선택한 후 Subject 라인에다가 test라고 입력하고, 입력기를 영어 키보드로 바꾼 뒤 다시 test를 다시 입력한 결과!


Voila!  Korean IME로 입력한 test에 나타난 빨간 언더라인이, 영어키보드로 입력한 test에서는 사라졌다.

결론: 영어로 이메일 쓸 때는 영어키보드를 입력기로 쓰자.  (아마도) 이것으로 Subject 라인의 스펠체크 에러는 문제 해결.

글쓰기: 따옴표는 언제 쓰는가? 생각

8월 15일자 및 이후 기자의 해명이 추가된 한겨례 신문의 기사를 읽던 중 메모.

1.


대략 인천시에서 성매매 종사자들에게 최대 2천여 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에 대해 일부 남성커뮤니티가 반발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기사의 첫번째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인천시 미추홀구가 성매매 집결지 종사자에게 1인당 2000여만원씩 자활 비용을 지원하기로 하자 오늘의유머, 웃긴대학, 뽐뿌, 인벤 등 남성 위주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창녀연금’ 등의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내용도 어떤 면에서는 자극적이라면 자극적인데, 거기에 따옴표를 써서 '창녀연금'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icing on the cake. 기사를 읽고 몇몇 사람들이 거론된 웹사이트들을 찾아가서 '창녀연금'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게시물이 있는지 찾아봤나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따옴표의 일차적 용법은 직접인용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좀 더 얘기해 보자).  그런데 (찾아본 사람들에게는) 놀랍게도, 기사가 나온 뒤 검색 시점에서 어느 웹사이트에도 "창녀연금"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게시물은 없었다!  이 사실은 곧 짤방화 되어 인터넷을 휩쓰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number=804225 (기사에 처음 거론된 오늘의유머 사이트다.)  이것에 근거하여, "그런 거 발언한 사이트 없는데? 기자가 뇌피셜로 신조어 만들어가며 기사를 쓰네 ㅋ (위 링크 짤방에 딸린 본문글)" 라고 하며 기자를 비난하기 시작.

기자도 이 사실을 알았는지, 원래 기사 밑에 "보도 이후" 라는 꼭지를 추가해서 기자의 해명을 덧붙였다.  "창녀연금"이라는 단어 자체는 없었으나, 검색한 게시물의 내용을 보면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주장인 듯. 기자의 글에 의하면:

"‘창녀 연금’이라는 표현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건 두 개의 단어를 별개로 쓰면서 기사에 인용할 수 없는 비속어까지 섞어서 쓴 표현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입니다."

2.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글쓰기에 있어 "따옴표를 언제 쓰는가" 라는 점이다. 따옴표는 크게 두 가지 경우에 사용된다. 첫번째는 원문의 글을 글자 그대로 "따와서" 자기 글에 넣을 때, 다시 말하면 직접인용을 할 경우이다 ("따옴표"라는 단어 자체가 "따오다"에서 왔으니까).  이때 사용되는 따옴표는 대개 겹따옴표이다.  두번째 경우의 따옴표는 글의 내용 중 작성자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표현할 때 사용된다.  이 경우, 사실 따옴표 말고 다른 방법도 사용된다.  이탤릭체로 바꾸던가, 볼드체를 사용하던가 등.  하지만 일반 신문 기사에서 이탤릭체나 볼드체는 자주 사용되지 않으니까, 따옴표를 강조용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텍스트 기반이었던 예전의 경우, 영어에서는 * (asterisk) 를 단어 앞뒤에 붙여서 강조/볼드 표시를 하기도 했다).  강조를 위한 경우, 홑따옴표와 겹따옴표가 혼용되는 듯 하다.  이 포스트의 한겨례 기사 인용부분은 첫번째 용법의 따옴표이고, 지금 이 문단에서의 따옴표는 강조 용법으로 사용된 따옴표이다.

기자의 해명글에 의하면 '창녀연금' 부분에 사용된 따옴표는 두번째 용법, 즉 강조 용법으로 사용된 따옴표로 생각된다.  웹사이트 게시물의 내용을 직접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대략의 내용을 "기자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그렇다는 점에서, 그리고 겹따옴표 대신 홑따옴표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기자가 기사의 요지 및 해석을 강조하기 위해 따옴표를 사용했다면 이해할 만 하다.  물론, 읽는 사람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창녀연금'이라는 단어는 실제 게시물의 단어가 아닌, 기자의 해석에 기반한 것이라는 내용을 적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문단의 바로 다음 다음 문장을 보면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

"이 때문에 기사에선 인용의 방식으로 도입부에 한 차례 언급했을 뿐, 그 뒤에는 성매매 업소 종사자, 성매매 피해자라고 썼습니다."

아니, 해명글 첫 문장에서 직접인용이 아니고 강조의 용법으로 '창녀연금'이라고 썼다고 해 놓고서는 같은 문단의 바로 두 문장 뒤에서 그게 아니고 "인용의 방식"으로 썼다고 하다니.  그것도, 자기 기사에 대한 비판을 읽고 나름 시간을 두고 고찰한 뒤 해명하겠다고 덧붙인 (라고 쓰고 "나름 생각 좀 하고 썼다는"이라고 읽는다) 꼭지에서 말이다.  이쯤 되면 기자에게 "인용의 방식"이라는게 무슨 뜻인지, 기자가 말하는 "인용"과 내가 알고 있는 "인용"이 같은 것인지 아닌지 꼭 물어보고 싶다.  설마, 웹사이트의 게시물들을 읽고 기자 나름대로 해석해서 "신조어"를 만든 걸 가지고, 웹사이트 게시물의 내용을 "인용해서" 만들었으니까 "인용의 방식"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이정도까지는 아니기를 빈다)?

3.

일개 블로그에 끄적이는 것도 아니고, 나름 언론사라는 곳에서 글쓰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기자라는 사람이 한갓 따옴표 하나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것을 만방에 고하고 있으니 참, 안타깝다.

4.

그러고보니 반년 쯤 전에 기자의 글쓰기에 대해서 을 썼었다.  그 신문이나 이 신문이나.

이제 월드컵은 이 시점 부로... 생각

월드컵 2018이 아닌 유로 2018이 되는 걸로.

카바니 없는 우루과이, 카세미로 없는 브라질이 하루에 다 집에 가게 되는 안타까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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