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es, damned lies, and statistics: 어느 화장실이 더 막히는가? [업데이트] 생각

화장실이 막히는 게 어디 하루이틀 일이겠냐마는 요 며칠 신문에서 화장실에 휴지통을 놓네 마네, 남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보다 더 막히네 어쩌네 하면서 기사를 쓰길래 읽어 보았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 잠시 메모.

모든 글에는 다 의도가 있고 신문의 기사라 한들 예외는 아니라, 기자가 어떤 쟁점을 주장하고 그에 맞는 증거를 제시하는 글쓰기가 뭐 나쁘다는 건 아니다.   글쓴 기자의 판단으로 중요한 증거를 취사선택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뭐 나쁘다고 하긴 어렵다.  하지만, 취사선택에도 정도가 있지.  이 정도면 거의 의도적인 왜곡 수준이라고 느껴진다.  같은 자료로 정 반대의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1. 1월 10일, 조선일보의 백수진 기자는 "공중화장실 휴지통 치웠더니 변기에 쓰레기만 더 쌓이더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0/2018011000154.html)  라는 기사에서 2017년 7월에서 9월간 지하철 1-4호선 변기막힘 건수를 인용한다.  출처를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사실 이것도 문제다) 아마 서울 지하철의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에 의하면 화장실을 없애는 기점으로  변기 막힘 건수가 두 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지하철 이용의 남녀 비율이나, 남녀 화장실 변기 개수의 차이, 계절 요인, 기타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수치 상으로는 휴지통 치운 것과 변기 막힘에 상관관계가 있어 보인다.

2. 그런데 이 기사가 말이 많았는지 같은 날 오후에 같은 신문사의 안소영 기자(1번 기사의 취재기자라 한다)는 "[댓글+] "여자 화장실 변기가 더 막힌다", 검증해보니"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0/2018011001754.html) 라는 기사를 올린다.   안소영 기자는 주장하기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보다 더 많이 막힌다" 라 하며, 이에 대한 근거로 "통계는 이렇다. 서울교통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9월 1~4호선 지하철역 122곳을 확인한 결과 남자 화장실 변기막힘 횟수는 1715건으로 여자 화장실(1430건)보다 많았다" 를 제시한다.  1715건이 1430건보다 많으니 남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보다 많이 막힌다는 이야기는 언뜻 보면 그럴 듯 하다.   이 뒤로 청소담당자들의 인터뷰를 추가하는데, 10명의 인터뷰는 통계적으로 거의 의미가 없다 보면 서울교통공사 자료의 "통계"가 안소영 기자의 주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 통계는 추측하기로 1번 기사의 그래프와 동일한 것으로 보이는데, 백수진 기자의 위 그래프에 의하면 남자 화장실의 막힘 건수는 1715건이고 (= 288 + 704 + 723) 여자 화장실의 막힘 건수는 1430건이다 (=360 + 345 + 725). 

그런데 같은 통계로 정 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한번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자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보다 더 많이 막힌다.  통계는 이렇다.  서울교통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9월 1~4호선 지하철역 122곳을 확인한 결과, 화장실의 휴지통이 있었던 7월과 휴지통을 없앤 9월 모두, 여자 화장실의 변기 막힘 건수가 남자 화장실보다 많았다.  특히 휴지통이 있었던 7월의 경우, 여자 화장실의 막힘 건수는 남자 화장실의 막힘 건수에 비해 72건이나 많았다."

근거는?


3. 짧은 기사 지면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으니 가지고 있는 근거와 자료 중에서 제일 타당해 보이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같은 자료로 정 반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면, 12시간도 안 돼서 추가기사를 쓰는 대신 일단 원래 기사에 대해 재고해 보는 것이 옳지 않나 싶다.  그 추가기사가 "반응이 뜨거운 기사의 댓글을 추려, 궁금증을 풀어드릴" 의도라면 더욱 더 말이다.  같은 자료로 상반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상황에서 한 쪽의 해석만 취사선택한 후 그걸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운다면, 이건 아마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아예 몰랐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했거나.  두 가지 모두, 기자의 글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4. 의도가 있는 글쓰기에 대해서: 내가 두 기자들의 이름을 명시한 이유는?  출처의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게 다 일까?

[2018년 1월 16일 업데이트]

나 말고도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한 것을 반영했는지, 안소영 기자는 1월 14일부로 자신의 기사를 수정했다.  수정한 부분을 발췌하자면:

"통계는 이렇다. 서울교통공사의 자료(5~8호선 157개역 164개소)에 따르면, 남녀 화장실 모두 쓰레기통이 있었던 2014년 5~8호선 남자화장실 변기막힘 횟수는 1646건으로 여자화장실(1279건)보다 많았다. 쓰레기통이 사라졌던 2016년에도 남자화장실(1931건)이 여자화장실(1198건)보다 더 많았다. (5~8호선 남자화장실에서는 2014년 12월 12일, 여자화장실에서는 2015년 4월1일부터 쓰레기통이 없어졌다.)"

수정된 기사는 원래 인용했던 1-4호선의 통계를 삭제하고, 대신에 2014년과 2016년의 5-8호선 변기 막힘 횟수를 통계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 통계 자료는 과연 그럴듯 한가?  쉽게 떠오르는 궁금증들을 보면:

1) 2014년과 2016년을 고른 이유는 아마도 쓰레기통을 없앴던 시기 때문인 듯 하니 그건 그렇다 치고, 기준 시점이 없다.  제시된 통계는 연간 통계인가, 아니면 월간 통계인가?  Reference period를 적는 데에는 열 글자도 필요없는데 명시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안소영 기자의 수정 전 기사에서는 석달만에 천여 건이 훨씬 넘게 막혔다는 점에서, 기준 시점이 궁금해진다.

2) 왜 하필이면 5-8호선인가?  동 시점에서 1-4호선의 통계는 어떠했는가?  수정 전 기사에서 1-4호선의 통계를 월별로 제시한 것으로 미루어 2014년과 2016년의 1-4호선 통계를 구하기가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만일 1-4호선의 통계도 같은 경향치를 보인다면 - 남자 화장실이 더 막힌다 - 한 줄 더 써 넣는 게 크게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언급할 것이 몇 가지 더 있지만, 논지는 이것이다.  수정 전이나 수정 후 모두, 기자가 의도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는 통계 수치를 골라서 보여준다는 의혹이 생긴다.  처음에 말했지만, 한정된 지면에 논지 전개를 해야 하니 이해는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 빈약한 통계를 가지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자 화장실이 여자 화장실보다 더 많이 막힌다" 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안타깝다.  Shame on you.

덧글

  • ㅁㅁ 2018/01/12 15:10 # 삭제 답글

    휴지통이 없는 기간은 남성이 두 달 여성은 한 달인 데이터를 몽땅 합쳐 놓고
    저런 주장을 펼치는건 레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다분히 의도가 있다고 밖에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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